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만이 치료할 수 있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갑니다.
가깝게는 가족, 친척, 친구 그리고 직장 선후배 그리고 학연 지연으로 연결된 사람들까지.
인간관계가 늘어날수록 좋은 일도 많지만 어떻게 보면 골치 아프거나 걱정거리가 늘어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
어떨 때는 내가 왜 저 인간과 친구가 되었을까? 왜 내가 이 모임에 가입했을까?
후회하는 일도 일어납니다.
제 조카뻘 되는 한 청년이 취업난을 뚫고 한 중견기업에 취직을 했습니다.
신입사원인지라 업무 익히랴 선배들 얼굴 기억하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세월을 보내고 있었죠.
그런데 자기 보다 6개월 빠른 선배 하나가 매사에 자상하게 대하더랍니다.
업무가 서툴면 꼼꼼하게 가르쳐주고 회사생활에 필요한 팁도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는 등등....
그 청년은 긴장된 상태에서 그 선배가 진짜로 고맙게 느껴졌다고 하더군요.
그 선배는 자기보다 한 살 어리지만 그는 깍듯하게 선배 대우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서 회의 시간에 그 선배가 거래처 관리에 대한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부장님이 거래처 관리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말해보라고 했고, 여러 사람이 의견 발표를 했습니다.
이윽고 그 청년도 선배의 거래처 관리 방안에 대한 불합리성을 언급하며
이렇게 하면 더 좋겠다는 개선방안을 이야기했습니다.
부장님은 신입사원이 멋진 아이디어를 냈다며 칭찬을 하며 회의는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런데 회의실을 나오면서 그 선배는 그 청년에게 들리는 소리로
"씨XX, 내가 그만큼 잘해줬는데.." 십원짜리 욕설을 섞어가며 중얼거리더랍니다.
그 청년은 회사업무상 자기 생각을 말했을 뿐인데 이런 말을 들으니 내심 황당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입니다.
그 선배는 청년이 뭘 물어보면 똥 씹은 얼굴로 아예 대꾸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그 선배는 만나는 직원들마다 그 청년에 대한 험담과 모함을 하고 다녔습니다.
그 청년은 알게 모르게 왕따를 당하고 있었고 자신도 그걸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음에 큰 상처를 받은 그 청년은 회사를 그만둘 생각까지도 했습니다.
퇴근하면서 혼자서 술잔을 기울이며 푸념하는 날들이 늘어갔습니다.
한 달 뒤 청년은 어김없이 힘없는 발걸음으로 퇴근하며 또다시 술잔을 기울일 생각을 하며 걷고 있는데
누군가 어깨를 툭툭 쳤습니다.
"요즘 많이 힘든 것 같은데 같이 소주 한 잔 할까?"
그는 다른 부서의 대리였습니다만 그냥 마주치면 인사만 할 뿐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그 대리의 제안이 의외였지만 회사 상사인지라 청년은 거절을 못하고 같이 술잔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대리는 청년을 왕따시킨 선배를 언급하며 원래 성격이 까탈스럽고 이기적이어서 회사 내에서도 친한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과 후배들이 자기보다 좋은 실적이나 의견을 내면 못 견뎌 하는 걸로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 청년은 대리의 호의적인 태도에 자신의 힘든 상황을 스스럼없이 털어 놓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대리는 '지금이야 힘들 수도 있지만 앞으로 회사생활하다 보면 그 선배에게 당한 것보다 더 험난한 시련이 많이 올 텐데 이런 일로 너무 마음 쓰지 말고 그 선배에게는 그냥 기본적인 예의만 지키고 직무에만 충실하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상투적인 위로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청년은 그 대리의 말에 어두웠던 가슴이 환하게 밝아옴을 느꼈습니다.
한사코 술값을 계산하고 헤어지는 대리의 뒷모습을 보며 그 청년은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만이 치료할 수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늘졌던 얼굴이 환하게 펴지고 입술에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우리는 직장생활하면서 불합리한 일들을 자주 겪습니다.
상사, 선배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갑질이 행해지죠.
생계를 위해 다니는 회사인지라 섣불리 거부도 못하고 수긍하고 따를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쩔 수 없이 마음에도 많은 상처가 생깁니다.
이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술과 흡연 그리고 다른 일탈적인 행위를 하기도 합니다만,
이러한 행동들은 상처를 어느 정도 감출 수 있을 뿐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만이 치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항상 상대방에게 친절하고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하는 따뜻한 위로의 말이 상처입은 상대방은 물론이고 결과적으로는 내 내면의 깊은 상처도 치료하기 때문입니다.